[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17·上>] 다윗, 시련을 통한 믿음의 훈련

등록날짜 [ 2025-08-13 11:14:13 ]

블레셋 해안가와 유대 산악지대

사이에 있던 방어 요지 ‘쉐펠라’

적군 침투할 통로여서 늘 전쟁터

다윗은 쉐펠라 엘라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힘으로 골리앗 무찔러


▶윤석전 목사: 마태복음 1장 1절에는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하나님의 마음과 가장 합한 왕이었으며(행13:22), 예수님의 족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다윗의 삶을 살펴보고, 그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도 하나하나 알아보겠습니다.


예루살렘(Jerusalem)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진 팔레스타인의 중앙산맥. 유다 광야의 끝 베들레헴(Bethlehem)은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린 엘라 골짜기(Valley of Elah)로 가는 길목이다.


또 다윗이 사울을 피할 때 피신한 사해(Dead Sea) 서쪽의 엔게디(En Gedi)는 유다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이었다. 하나님은 엔게디의 건조한 땅에 인간의 갈증을 풀어 주는 계곡을 주셨고, 다윗은 엔게디 물로 갈급한 육신과 영혼까지 씻으며 하나님께 나아갔다.


<사진설명> 엘라 골짜기 전경. 블레셋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 군대가 진을 쳤던 곳이다. 이곳에서 소년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삼상17:45)으로 나가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죽였다.



▶윤석전 목사: 예수의 족보에 다윗이라는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다윗 하면 엔게디를 떠올리게 됩니다. 사막에 흐르는 엔게디의 물줄기가 얼마나 시원하면서도 신기한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멸망할 인류에게 구원의 한 줄기 생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엔게디의 물줄기는 사막에서 너무도 귀한 오아시스입니다.


또 다윗 하면 골리앗과의 전쟁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하나님의 승리에 대한 개가를 올려 드리고 싶은 일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용감한 소년이었다고 이해하기 쉽지만, 사실 다윗은 용기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엘라 골짜기에서 전쟁이 일어나 이스라엘 백성이 벌벌 떨던 순간에도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삼상17:45)으로 나가서 골리앗을 때려 부숩니다. 이 엘라 골짜기가 베들레헴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알려 주세요.


▶홍순화 교수: 베들레헴은 “다윗의 동네”(눅2:11)라는 말씀처럼 다윗의 고향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은 해발 700m가 넘는 유다산지의 고지대에 있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로 쳐들어오던 블레셋 사람들은 지중해와 인접한 해안평야지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해안평야지대에서 베들레헴으로 쳐들어오려면 유다 산지에 있는 골짜기를 따라 올라와야 했고, 그 길목에 엘라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군대의 이동을 저지하려고 엘라 골짜기 부근을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엘라 골짜기가 뚫리면 베들레헴으로 가는 통로도 열리게 됩니다.


또 베들레헴에는 후사(Hushah)라고 불리는 성경 속 동네가 있습니다. 학자들이 후사의 위치를 연구해 봤더니 훗산(Husan)이라고 하는 이름이 비슷한 동네가 있었고, 오늘날 베들레헴 서쪽의 훗산이 있는 곳은 옛 마을들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적군들은 엘라 골짜기와 후사 지역을 통해 베들레헴으로 침입하기 때문에 다윗이 전투에 참여한 형들을 만나러 갔다가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과 싸우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엘라 골짜기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방어에 사용된 요충지였습니다. 


<사진설명> 베들레헴 서쪽의 도시 훗산 전경. 훗산은 성경 시대 후사였다고 추정하며 이스라엘에 쳐들어온 적군은 엘라 골짜기와 후사 지역을 통해 베들레헴으로 침입했다.



▶윤석전 목사: 엘라 골짜기는 쉐펠라(She phelah)의 한 지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쉐펠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교수: 사실 쉐펠라는 번역하면 안 되는 고유명사입니다. 성경에는 대부분 ‘평지’(신1:7)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살던 곳은 유다 산지여서 해발 700∼800m 정도 고지대입니다. 반면 블레셋 사람들은 서쪽 해변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스라엘로 쳐들어오려면 해변과 유다 산지 사이를 거쳐 와야 하는데, 이 쉐펠라는 그 지역만 가리키는 고유명사입니다. 일반 평지와는 다른 곳이어서, 학자들은 해발 100~450m인 그 중간 지점을 쉐펠라라고 하는 고유명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쉐펠라가 요지인 이유는 블레셋이 해변가에서 쳐들어올 때 반드시 쉐펠라 지역을 통과해서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산지로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전쟁 때문에 쉐펠라 지역을 방어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또 이 지역은 사람이 살기에 굉장히 좋은 곳입니다. 해변가의 더운 기후와 산악지대의 추운 기후 사이에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살기가 가장 좋고 땅도 비옥했습니다. 그 탓에 이 지역은 늘 블레셋과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쉐펠라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유명한 골짜기들이 있는데 제일 위부터 아얄론(Aijalon) 골짜기와 소렉(Sorek) 골짜기가 있고, 남쪽으로 더 내려가서 엘라 골짜기와 스바다(Zephathah) 골짜기(구브린 골짜기, Guvrin) 등이 있습니다. 쉐펠라 지역은 이스라엘 역사 중에서도 특별히 다윗 시대에 제일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사진설명> 쉐펠라 부근 지도. 쉐펠라는 서쪽의 해안평야와 유다산지 사이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다. 블레셋이 해변가에서 쳐들어올 때 아얄론, 소렉, 엘라 그리고 스바다(구브린) 골짜기 등 쉐펠라 지역을 통과해서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산지로 올라왔다.



▶윤석전 목사: 엘라 골짜기에서 일어난 다윗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새로운 역사의 승리를 안겨 주는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윗의 생애를 하나님이 어떻게 쓰겠다고 결정한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차준희 교수: 엘라 골짜기는 다윗과 골리앗의 격전지로 유명합니다. 엘라 골짜기는 무명의 다윗을 국가적 영웅으로 급부상하게 해 준 격전지입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데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등장합니다. 일대일 싸움에 있어서는 최강자입니다. 성경은 그의 키를 “여섯 규빗 한 뼘”이라고 기록합니다. 약 3m에 가까운 신장이며, 일반인의 힘으로 도저히 제압하기 불가능한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골리앗이 승자몰수 전쟁을 제안합니다. 일대일로 싸워서 이기면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취하자는 제안입니다. 만약 전면전을 하게 되면 희생자가 많아지므로, 그렇게 하기보다는 각 진영에서 최강자가 나와서 이긴 쪽이 진 나라를 종 삼자며 도발한 것입니다.


그런데 골리앗의 신장이 워낙 컸고 중무장을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사울왕은 이미 기가 꺾인 상태였습니다. 사울도 “모든 백성보다 어깨가 하나 더 있었다”(삼상9:2)라고 기록될 만큼 키가 컸으나 그 역시 골리앗 앞에서는 완전히 압도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두가 낙심하고 있을 때 소년 다윗이 등장합니다. 조그만 소년 다윗이 등장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만 가지고 나갔습니다. 골리앗이 그 당시 최첨단의 무기로 무장하고 있어서 다윗에게도 갑옷을 입혀 줬지만 “나는 갑옷이 익숙지 않다”라며 벗어던집니다. 그저 평상시 목동일 때 가지고 다닌 막대기, 물매(무릿매), 물맷돌 5개를 가지고 전쟁에 나섭니다.


이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고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삼상18:7)이라며 세간의 칭송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이 부각되는 사건이었고, 이후 사울이 다윗을 경계할 만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장소가 엘라 골짜기이며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터였습니다.


▶윤석전 목사: 다음 시간에도 이어서 마태복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족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한 역사를 탐색해 보겠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91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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