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된청년회 직분자MT] 주여! 부흥과 하나 됨 이루게 하소서!

등록날짜 [ 2025-08-01 13:18:06 ]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부모를 떠나
세상에서 재물과 시간 허비했지만
탕자에게 남는 것은 공허함과 죄뿐
그러나 탕자가 집으로 돌아갈 때
아버지의 집에는 모든 것이 있다
사랑과 용서, 새로운 시작이 있다
어서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윤석전 著
당신은 떠나 있다. 하나님과의 사이가 멀어졌다. 주일예배가 습관적이고, 기도가 형식적이며,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교회는 출석 체크용이고, 신앙은 일요일에만 잠깐 켜는 스위치처럼 되어버렸다. 몸은 교회에 와 있어도 마음은 이미 ‘먼 나라’로 떠나 버렸을지 모른다.
윤석전 목사의 저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자』는 이렇게 말한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비참해진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따르고 아버지의 간섭과 시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한다’며 떠났다. 부모의 잔소리가 고까웠고, 교회의 가르침이 답답했다. 그래서 자유를 찾아 떠났다. 그러나 도착한 그곳은 어디인가. 번아웃, 무기력, 우울증. 이것이 우리가 찾은 자유의 결과이다. 책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탕자는 인생의 가치, 시간의 가치를 모르는 자이며, 위험한 지식에 속아 인생을 탕진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현대인은 하루 평균 6시간을 스마트폰에 쏟는다. 유튜브 쇼츠, 인스타 릴스, 틱톡에 시간을 바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떠났지만 다 허비해 버렸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달란트를 가지고 아버지를 떠나 그것들을 허비하고 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자』는 “잃어버린 날들은 회수할 수 없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절대로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시간을 탕진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라며 안타까워한다.
무엇보다 탕자의 문제는 단순히 돈을 낭비한 것이 아니다. 그는 관계를 버렸다. 아버지와의 사이, 가족과의 사이를 스스로 끊었다. 우리도 그렇다. 하나님과의 사이, 부모와의 사이, 교회와의 사이를 스스로 끊고 있다. “탕자는 하나님과 아버지의 사랑을 무시하고 자기 스스로 살려는 근성을 가졌습니다”라는 윤석전 목사의 지적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솔직해질 것을 당부한다.
값없이 받은 구원을 잊었다
탕자가 돼지 먹이를 먹으며 절망했을 때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우리 아버지 집에는 품꾼조차 먹을 것이 풍족한데….’ 이후 탕자가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하다.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랑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석전 목사는 이렇게 강조한다. “하나님은 어떤 값을 지불할지라도, 어떤 희생을 치를지라도 인간을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려는 사랑으로 충만한 분이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이다.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착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구원은 값없이 주어진 선물이다. 예수님의 피로 이미 값을 치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탕자 같은 우리도 돼지우리에 있다가 영원히 죽었어야 했다. 아무리 후회해도, 아무리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길이 없었을 것이다. 십자가는 사랑의 극치이다. 죄 없는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셨다. 우리가 받아야 할 벌을 대신 받으셨다. 이것이 대속이다.
우리는 이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며 ‘나중에 믿으면 되지’, ‘아직은 내 인생을 즐기고 싶어’라고 말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구원은 나중으로 미룰 수 없다. 내일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탕자가 돼지우리에서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돌아갈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성과주의 시대에 ‘조건 없는 사랑’은 낯설지만, 당신이 얼마를 버는지, 어떤 스펙을 가졌는지 묻지 않고 “돌아오라”라고 말하는 음성, 그것이 복음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정체성
회개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탕자도 그랬다. 아버지 앞에서 철없이 큰소리치던 그가 집으로 돌아와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눅15:21)라고 고백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는 품꾼이 되려 했지만, 아버지는 그를 아들로 받아들였다. 더러운 옷을 벗기고 제일 좋은 옷을 입혔다.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겼다. 이것이 회개의 결과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때 일어나는 일이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탕자가 돼지우리에서 일어나 아버지 집을 향해 걸어간 것처럼, 우리도 죄의 길에서 돌이켜 아버지를 향해 걸어가야 한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자』도 “생각과 행동이 잘못되었을 때 바로 깨닫고 돌아오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온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얻는다. 더는 실패자나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특별한 존재이며, 이 정체성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돈의 노예, 성공의 노예, 인정의 노예가 되어 SNS에서 타인의 삶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이미 하나님에게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이다.
또 이 자유는 우리를 순종으로 이끈다. 윤석전 목사도 책에서 “순종은 자기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순종이 억압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다르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은 간섭이 아니라 사랑이므로 사랑받는 자녀가 부모의 말을 듣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청지기 정신도 여기에서 시작한다. 내 시간과 재능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다. 책은 이렇게 도전한다. “주어진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지 전심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공부, 찬양, 기도, 충성 등 모든 일에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각각에 맞는 역할을 주셨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 학생은 공부해야 한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예배드리고 전도해야 한다.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재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청지기는 주인의 뜻을 따른다.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라면, 그분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지금 일어나 돌아가라
결단의 시간이다. 탕자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고 마음먹은 것처럼, 우리도 일어나야 한다. 첫걸음은 작아도 된다. 아래는 탕자인 우리가 결단할 실천 내용이다.
①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기도하라. 스마트폰이 당신의 시간을 지배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훔쳐간 시간을 되찾고, 그 시간을 하나님과 대화하는 데 사용하자. 언제 어디서든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 기도는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탕자가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라고 고백한 것처럼,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고백하면 된다.
② 예배에 참석하라.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말씀을 듣는 시간이다. 은혜를 받는 시간이다. 교회에 가지 않고 예배드리지도 않으며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또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는 성도 간의 교제를 경험하라.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함께 예배드리는 지체들이 필요하다. 서로 격려하고 도전하는 교회가 필요하다.
③ 2025년 하계성회에 참가하여 믿음을 10년 이상 앞당기라. 성회는 특별한 은혜의 시간이다. 일상을 벗어나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이다. 그곳에서 많은 청소년과 젊은이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말씀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능력이 나타난다. 열심히 공부하여 지식이 생기듯, 열심히 모여 예배드리며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신앙생활도 잘할 수 있다.
책의 마지막 메시지는 이것이다. “부모는 언제라도 여러분이 돌아오면 맞이하기 위해 이미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자식이 돌아오는 길을 막는 부모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려고 한다면 이미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문은 지금도 열려 있다
돌아온 탕자를 품에 안은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당신을 기다리신다.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매일 기다렸다. 먼 길을 바라보며 혹시 아들이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이 돌아왔을 때 달려가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윤석전 목사도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과 부모 그리고 목사가 원하는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멸망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안식처인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입니다”라고 말한다.
당신이 얼마나 멀리 갔든, 얼마나 오래 떠나 있었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돌아오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스스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지금의 나를 만드신 것”이라는 고백이 필요하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것을 인정할 때 하나님과의 진정한 회복이 시작된다.
2025년 7월의 오늘,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돼지우리인가. 아니면 이미 돌아가는 길 위인가. 아직 늦지 않았다. 탕자에게 돌아갈 아버지 집이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돌아갈 곳이 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이 그 길을 열었다. 우리는 일어나 걸어가면 된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 부모를 떠난 세상, 교회를 떠난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그곳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공허함뿐이다. 그러나 돌아가면 모든 것이 있다. 사랑이 있고, 용서가 있고, 새로운 시작이 있다.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이것이 2025년 우리 세대가 들어야 할 메시지이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문은 열려 있다. 아버지는 당신을 기다리신다. 지금이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자.
위 글은 교회신문 <910호> 기사입니다.